불우한 어린 시절...운좋게 농구 커리어 시작
뛰어난 리바운드와 수비 능력...우승반지 5개
조던·피펜과 함께 '시카고 왕조' 세운 주역

[MHN스포츠 박혜빈 기자] 60년전 오늘, NBA 역사상 최고의 리바운더이자 수비수로 꼽히는 데니스 로드맨이 태어났다. 

로드맨은 1991-1992시즌부터 1997-1998시즌까지 7년 연속 리바운드왕을 차지했다. 1991-1992시즌에는 평균 리바운드수 18.7을 찍었고, 시즌 평균 리바운드 15이상인 시즌만 6번이다.

로드맨은 악착같은 리바운드 뿐만 아니라 끈질긴 수비로도 유명하다. 1990년과 1991년 올해의 수비 선수상을 수상했고, 디펜시브 퍼스트 팀에 7회, 세컨드 팀에 1회 선정되었다. 

사진=데니스로드맨 공식 SNS
[사진=데니스 로드맨 인스타그램]

■ 불우한 어린 시절...운좋게 농구 커리어 시작

로드맨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일찍이 아버지가 집을 나갔고, 스쿨버스 기사였던 어머니는 돈을 안 벌어 온다고 로드맨을 자주 집에서 쫓아냈다. 

쫓겨난 로드맨은 길거리 노숙을 하며 잡다한 알바를 전전했다. 시계를 훔치다 유치장 신세를 진 적도 있지만 다행히 강력 범죄를 저지르진 않았다.

대신 어린 로드맨은 친구들이 마약을 할 때마다 체육관을 찾았다. 농구가 유일한 삶의 낙이었던 로드맨은 마약 대신 매일 10시간 가까이 농구를 했다. 

하지만 키가 작았던 로드맨은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그저 농구를 잘하고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다. 

로드맨이 농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졸업 후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 168cm였던 키가 졸업반 시절 갑자기 201cm로 자랐다. 

고등학교 졸업 후 로드맨은 운 좋게 사우스웨스턴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에 스카우트되었다. 뒤늦게 농구를 시작한 탓에 1학년 때 이미 웬만한 졸업생 나이가 됐지만 로드맨은 언제나 전력을 다해 뛰었고 눈에 띄는 활약을 펼쳤다. 

그 결과 3년 후인 1986년 NBA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27순위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 지명된다. 당시 로드맨의 나이는 25세였다.  

디트로이트 시절 데니스 로드맨 [사진=데니스 로드맨 인스타그램]

■ '배드보이즈' 시절...리바운드와 수비 능력 발견

로드맨은 피스톤즈에 입단한지 2~3년이 되자 자신의 최고 장점이 리바운드와 수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로드맨은 새벽에도 체육관에 나가 공이 떨어지는 지점을 공부했다. 새벽 3, 4시에 선수들을 불러 여기저기서 슛을 해보라고 하며 그 슈팅을 막는 연습을 했다. 공이 움직이는 각도와 궤도를 염두 해 공을 받을 수 있는 위치를 연구한 것이다. 

수비와 리바운드에 집중했던 로드맨은 몸을 던지는 허슬 플레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로드먼은 피스톤즈에서 아이재아 토마스, 조 듀마스, 빌 레임비어 등과 함께 '배드 보이즈'라고 불리며 특유의 거칠고 위험한 플레이를 보여줬다. 

로드맨이 가세한 피스톤즈는 동부 컨퍼런스 1위를 달성하며 승승장구한다. 컨퍼런스 파이널에서는 시카고 불스를 꺾고 첫 우승을 달성한다. 

그 다음 해에도 피스톤즈는 우승을 달성하지만 척 데일리 감독의 사퇴와 함께 로드맨도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이적한다. 

샌안토니오에서 온갖 구설수에 오르던 로드맨은 결국 시카고 불스로 거취를 옮긴다.

사진=데니스로드맨 공식 SNS
사진=데니스로드맨 공식 SNS

■ 조던·피펜과 함께 '시카고 왕조'를 세우다

로드맨 농구 인생 2막은 시카고 불스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이적 초기에는 '배드보이즈'로 악명 높았던 로드맨의 합류를 달갑지 않게 보는 시선이 많았다. 많은 팬들이 거칠고 위협적인 플레이가 농구의 진정한 매력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스톤즈 시절 불스를 막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공부를 했던 로드맨은 팀의 플레이에 쉽게 적응했다. 

불스는 마이클 조던, 스코티 피펜, 로드맨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선수층을 바탕으로 1996, 1997, 1998년 쓰릿핏이라는 대업을 달성한다. 

피펜이 조던이 많은 득점을 할 수 있게 어시스트 등으로 직접적인 도움을 준 선수였다면 로드맨은 골 밑에서 떨어지는 공을 리바운드해서 패스하는 역할을 했다. 

강력한 수비력을 바탕으로 시카고의 골밑을 지켰던 로드맨의 존재감은 스코티가 빠졌을 때 더욱 돋보였다. 

사진=데니스로드맨 공식 SNS
사진=데니스로드맨 공식 SNS

■ 은퇴후 영구결번, 명예의 전당 헌액

1998년 조던이 은퇴한 뒤 로드맨도 불스를 떠났다. LA 레이커스와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각각 1시즌을 보내지만 결국 방출되고 그렇게 은퇴를 한다. 

은퇴 후 2011년 로드맨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로드맨의 번호 10번은 영구결번이 되었다. 

작년에 공개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에서 로드맨은 이런 말을 남겼다. "전 낙오자, 죄수가 되거나 진작에 죽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뼈 빠지게 일해서 여기까지 왔죠."

수많은 잘못된 행동과 훈련 불참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로드맨의 농구에 대한 실력과 열정만큼은 대단했다. 

로드맨이 말했듯이 대중들이 그를 미치광이라 여길 수는 있지만, 팀원으로서의 그의 모습을 비난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로드맨 없이 시카고 불스의 챔피언십 우승을 상상할 수 없기에.

사진=데니스로드맨 공식 SNS
사진=데니스로드맨 공식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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